역사와 인문학

五帝 논란 종결

다음족 2024. 5. 15. 00:05
728x90
300x250

앞서 三皇과 달리 五帝는 史記 本紀 첫머리에 놓이며 漢代부터 正史로 공인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皇과 帝의 권능 차이임을 전술했다. 史記 本紀에 의해 五帝는 흔히 黄帝, 顓頊, 帝喾, 堯, 舜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黄帝가 伏羲와 神農 뒤로 三皇에 들고 少昊가 五帝 첫머리에 들거나 伏羲, 神農, 黄帝가 五帝에 들고 그 뒤에 堯, 舜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五帝도 이처럼 정설이 없고 이들을 인간화하여 역사에 편입시켰음에도 원본은 신앙이므로 결국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고, 夏商周 三代의 권위를 위해 그 앞에 위대한 군주들을 나열하여 계보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五帝説이 五行 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은 익히 알려졌다. 五帝는 원래 青(木), 赤(火), 黄(土), 白(金), 黑(水), 각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에서 나왔다. 그것에 각 지역에서 떠도는 민담과 전승을 가져와 그 위치를 담당하는 신으로 전래되었다가 漢代에 이르러 三代 전 위대한 다섯 군주로 완성되었다
이에 결론을 내리면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문학 작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문학 작품으로 이해된 각 다섯 방위신 五帝는 동방 伏羲, 남방 神農, 중앙 黄帝, 서방 少昊, 북방 顓頊이다. 이들 신 또는 제왕 이름은 시호다. 학자들은 고문헌에 의거해 商代 전 夏代에는 시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보다도 전 시대에 시호라는 게 존재했을 리 없으니(문자조차 없었고 제례, 의례에 쓰인 것 같은 문양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후세의 가작일 것이다

黄帝가 중앙색 黄에서 나왔음은 이미 자명하다. 중앙은 천자 방향이니 黄帝에게 문명을 개척한 갖가지 공적이 덧붙여져 그는 중화 문명 開祖가 됨과 함께 중국인 공통 조상이 되었다. 黄帝가 수레를 처음 개발했다고 전해져 그의 諱가 軒轅이라고 하는데 수레는 청동 못을 박아야 바퀴가 부러지지 않는데 그의 시대는 신석기시대므로 아직 청동을 제련하지 못했고 나무못으로는 수레 바퀴가 잘 부러지므로 黄帝 시대에 수레가 개발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옛 商族 대표 王亥란 이가 牛車를 개발했다는 전승이 있듯 수레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서야 완전해질 수 있었다
神農은 黄帝와 형제라고도 전해지고 炎帝, 태양신으로도 불린다. 그는 黄帝와 천하를 두고 전쟁을 치른 끝에 패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전해지는데 이 모든 전승은 창강 이남에서 일찍이 태양을 섬겼던 신앙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神農은 베트남 건국 시조와도 혈연으로 이어졌다

夏商周 三代 왕실은 顓頊과 帝喾 자손으로 나뉘는데, 帝喾은 이미 商代 元祖로 유명하다. 그는 갑골문 商人 高祖 夔에서 나왔고 夔는 신화 속 천제 帝俊으로 와전되었다가 帝喾과 舜, 少昊로도 분화되었음이 갑골학자와 고고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夔자는 夒에서 파생되었고 夒자는 유인원을 뜻하는데 어째서 유인원이 商族 조상이 되었는지는 뚜렷이 밝힐 수 없으나 어쩌면 고대인들도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했음을 무의식 중에 기억했을 수 있다. 화석으로 발견된 猿人이 이를 뒷받침한다. 12支 원숭이띠 申은 갑골문에서 번개 모양이고 이 字와 합쳐진 字들은 神을 뜻하는데 인간이 그려낸 神 모습은 인간 모습이 기본이므로 申에 원숭이가 상징이 된 것은 이와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商代 왕실은 方族들을 병합함과 함께 연합하며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여 당대에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는데 그것이 혈연으로 연결된 최고 조상신 夒에게도 이입되어 夔와 같이 새 머리를 한 듯한 복합된 문양으로 파생되었을 것이다

갑골문의 夔

그리고 이 문자가 후대 역사가들에게 이어져 帝俊이 새 머리에 원숭이 몸을 했다는 등 전승으로 와전되었겠다. 商代는 대륙 역사상 최초 국가 및 初代 왕조로 商代 元祖는, 그 뒤를 그대로 이은 周代 元祖로도 공유되었고 周 왕실은 帝喾 적통이 되었다
顓頊은 정통 史書에 商代 전 夏 왕조 시조라고 하는 禹의 조상으로 전해지는데 그는 若水, 오늘날 쓰촨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가 제위에 올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곳은 허난성이지만 쓰촨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秦 惠文王 시대에 처음으로 巴蜀을 점령하고 始皇帝가 처음으로 대륙을 하나로 아우른 뒤 漢代 帝室이 하나의 대륙을 위한 명분으로 蜀, 쓰촨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전승을 채용한 듯하다. 다만 顓頊의 행적은 상당수가 각색되었을 것이다. 顓頊과 그 아비 韓流는 사람 생김새에 돼지 머리와 입, 발 그리고 麒麟 몸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父子 외형에는 여러 동물들 부위가 섞였다. 顓자와 頊자에는 머리를 뜻하는 頁자가 붙었다. 갑골문에 의하면 이 字는 동물 머리를 뜻하는 것 같다(갑골문에서 사람은 오늘날 졸라맨처럼 그려졌다)

갑골문의 頁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느 동물 모양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顓頊과 帝喾, 帝俊 같은 신들은 원시 토템에서 창작되었을 것이다

両昊, 少昊는 대륙 동해안 방면 태양의 鳥 신앙에서 상상되었으며 少昊라는 신도 전술했듯 후세에 帝俊, 帝喾에서 갈라져 나왔다. 동방 상제지만 나중에 서방 상제로 바뀌었는데 고문헌에 秦族 조상이란 기록이 있다. 비록 史記 秦本紀에는 顓頊이 秦族 조상이 되었지만, 少昊라는 전승은 그보다 먼저 존재했으니 秦族이 본디 少昊氏를 섬기던 동해안 선주민이었는데 어느 시대에 서방으로 이주했음을 암시한다. 그 예로 商族과 秦族 시조 탄생 신화가 똑같고 고문헌에 秦族 간부가 商代 왕실을 위해 일했다는 기록도 제법 보이며, 陕西 秦族 선조 무덤도 商式을 따라 했다
太昊는 伏羲며 산둥 허쩌시 雷澤에는 그의 탄생 신화가 전해지므로 伏羲 전승 또한 본디 대륙 안에서 구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帝가 현세 왕권 수단이 되었듯 이들 다섯 신의 행적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문명을 전파했으니 五帝가 정통 역사에 편입되는 데는 그럴만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오래된 논란을 종결한다. 문학 작품으로 이해된 三皇은 三才 사상에 따라 天皇, 地皇, 人皇이고 五帝는 伏羲, 神農, 黄帝, 少昊, 顓頊이다


갑골문이 발견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고고학으로 인해 전통 문헌의 기록이 마냥 허황되진 않고 그렇게까지 과장되었을 법한 근거가 충분함이 밝혀짐과 함께 고대사의 환상은 더 많이 깨졌으니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의 관점에서 역사의 일부로만 이해해야만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듯 上古史의 허상은 모든 정황이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것을 곧이 곧대로 정통 역사로 받아들이는 역사관은 한심하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