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너티브 록의 열조 너바나Nirvana

2022. 7. 4. 15:46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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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는 3인조 미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1987년에 워싱턴 주에서 결성해 이듬해에 싱글 음반 Love buzz로 데뷔해 7년 동안 활동하다가 1994년에 밴드의 보컬과 기타 담당이자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죽으면서 해체되었다. 내 블로그의 이름도 이 밴드로부터 가져왔다
당시 헤비메탈로 점철되어 쇠퇴하던 록 씬에 헤비메탈을 대안하는 얼터너티브 록 열풍을 불어넣어 록 씬을 뒤바꾸고 언더그라운드 씬, 감성 씬, 펑크 씬과 같은 마이너 음악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록 씬의 판도가 오늘날처럼 되는데 기여했다. 너바나 덕분에 2000년대 후반까지 록, 헤비메탈, 밴드 음악가들이 다른 장르로 여러 가지 음악을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4,000만 장 이상, 전 세계에서는 7,5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1. 구성원과 커트 코베인

너바나는 보컬 및 기타 담당이자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과 베이스 담당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 그리고 드럼 담당이자 백 보컬이기도 한 데이브 그롤Dave Grohl로 이루어졌다. 다만 데이브 그롤은 1990년에 영입되었고 그전에 드럼은 여러 번 바뀌었다. 기타도 두 번째 담당이 잠깐 영입된 적이 있다. 코베인과 노보셀릭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커트 코베인의 생애가 너바나의 음악에 영향이 컸는데 그의 유년 시절은 우울했다. 중산층인 척 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가 태어났을 때 부친은 21살, 모친은 19살이었다. 코베인이 9살이 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점점 다툼이 심해져 이혼했고 부친이 재혼하지 않겠다면서 재혼해 아이 둘을 낳고 친 여동생까지 데려가면서 코베인은 죽을 때까지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의 우울증은 타고나기도 했는데 양가 어른들이 두루 정신병을 앓았다. 외증조부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해를 하다가 병원에서 죽었고 다른 두 명의 삼촌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부모가 이혼하고 모친과도 사이가 나빴는데 모친의 바람기 때문이었고 양부와도 사이가 나빴을 뿐만 아니라 양부는 코베인과 모친에게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양부의 폭력을 피해 가출도 했고 가출하는 동안은 친척과 친구의 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노숙도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학교에서는 폭력을 일삼아 동창들과 교사로부터 배척받았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마초, 마약, 담배에 중독되었다. 예술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처음에는 미술을 했다가 음악으로 갈아탔고, 너바나에서는 기타를 맡았지만 음악을 시작하면서는 드럼을 처음으로 배웠다. 같은 너바나의 일원 노보셀릭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과거가 어둡다. 대개 음악 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과거가 있어 감수성 등으로 인해 마약 등을 많이 하긴 한다
타고난 코베인의 감수성과 불우했던 그의 가정환경 등이 너바나의 노래 가사에 잘 나타나는데 너바나의 음악은 그들의 장르인 펑크punk가 1990년대부터 얼터너티브 록과 함께 나타난 그런지grunge란 패배주의, 염세주의 감성과 맞물려 다소 공격적이고 거친 음악을 만들어냈다. 너바나의 대표 명곡 틴 스피릿과, Come as you are의 가사에는 총(gun)이 등장하고, 코베인은 몇몇 자기혐오의 노래도 썼는데 Lithium에서는 스스로 자기를 못생겼다고 비하하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소위 꽃미남인데. Polly는 1987년에 제럴드 아서 프렌드가 14살 소녀를 납치해 범하고 고문한 사건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노래를 썼고. 다만 이 노래의 마지막은 실제와 다르게 소녀가 가해자를 따돌리고 벗어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Polly는 발라드 노래로 분위기는 아주 잔잔하다
또한 커트 코베인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약자들(동성애, 유색인종)의 편이었고 페미니스트기도 했는데 코베인의 사상이 All apologies와 같은 노래에 표현되었고, 기존 백인 남자들의 마초스러움을 싫어했는데 In bloom과 Territorial pissings와 같은 노래에 잘 나타났다. 코베인은 고전 하드 록 밴드 레드 제플린, 에어로스미스, AC/DC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지만 성인이 되고 그들의 노래에 여자가 한낱 놀잇감으로 표현된 것을 알고는 그들의 음반을 헐값에 팔았다(레젭의 레몬 송, 에어로스미스의 Walk this way, AC/DC의 Shoot to thrill 등이 그러하고 이들이 음악에 다룬 여색, 놀음 등의 주제가 80년대 글램 메탈로 이어짐). 그러나 여전히 레젭의 노래로 밴드 연습을 했고, 코베인은 스스로 인정한 50대 명반에서 에어로스미스의 Rocks 음반을 언급하며 그들의 음악을 아예 부정하진 않았다

2. 결성과 메이저 데뷔

데뷔 시절 원년 너바나. 맨 왼쪽의 데이브 그롤 전에 드럼 담당 채드 채닝

1987년 미 워싱턴에서 코베인이 노보셀릭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고 한동안은 시애틀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공연을 하며 이름을 알리다가 이듬해에 싱글 음반 Love buzz로 메이저에 데뷔했다. 그리고 얼마 뒤 600달러로 첫 정규 음반 Bleach를 발표했다

Bleach가 발표되자 이 음반을 바탕으로 첫 순방 공연을 다녔고 활동량보다 판매량은 북미 4만 장에 그쳤다. 1989년 11월부터는 유럽 순방 공연을 다니며 마니아 층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언론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록의 기대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부터는 새 드럼 담당 데이브 그롤이 들어오며 오늘날 잘 알려진 3인조 너바나가 완성된다
당시 너바나와 같이 나타난 얼터너티브 록 밴드 펄 잼Pearl Jam과 함께 헤비메탈 밴드 건즈 앤 로지스를 너바나와 용과 호랑이라고 했지만 너바나는 이 시절보다 좀 더 나중에 건즈 앤 로지스를 뛰어넘었지 너바나가 막 나타난 시절만 해도 메이저 록 씬은 건즈 앤 로지스의 시대였다. 물론 이 시절 록 씬은 헤비메탈로 점철되어 저물기 시작했고 건즈 앤 로지스는 헤비메탈의 마지막 세대자 자존심으로 같은 헤비메탈 계열 밴드자 스래쉬 메탈의 지존 메탈리카보다도 잘 나갔었다. 너바나가 떠오르자 건즈 앤 로지스만이 너바나와 인기로 맞설 수 있었다

3. Nevermind 그리고 록 씬의 지각변동

1990년 9월 24일에 너바나는 대망의 두 번째 정규 음반 Nevermind를 발표한다. 밴드는 각종 공연을 돌아다니며 인지도를 쌓음과 함께 Nevermind를 발표하기 위해 수록곡들을 썼다. 이 음반에는 그 유명한 너바나의 대표 흥행 곡 Smells like teen spirit부터 Come as you are, In bloom, Lithium 등의 노래들이 들어갔다. Nevermind는 나오고 나서 빌보드 144위를 기록한 데 그쳤으나 처음 찍어낸 5만 장이 순식간에 팔려나가고 틴 스피릿의 뮤직비디오는 MTV에서 계속해서 상영되었다

Smells like teen spirit

너바나의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고 1991년에 음반은 50만 장이 넘게 팔렸으며 1992년 1월 11일에는 빌보드 음반 차트 1위에 올랐으며 같은 해에 음반은 300만 장이나 팔렸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당시 록 씬에 점철되었던 헤비메탈이 저물고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가 열렸으며 너바나는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건즈 앤 로지스와 스래쉬 메탈의 지존 메탈리카를 밀어내고 마이클 잭슨마저 제쳤다. 이로부터 음악 시장에는 너바나와 같은 비주류 장르의 음악가들이 나타났고 그린 데이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록 밴드들이 너바나의 뒤를 이었다
사실 너바나의 음악은 주제가 광범위하고 심오하지 노래는 거의가 똑같은 가사만 반복되어 생각보다 단순하다. About a girl은 모든 절에서 똑같은 가사가 반복되고. 그들의 위대함은 헤비메탈이 주류 장르였던 시절에 비주류 장르를 메이저에 가져와 록의 역사를 뒤바꾸고 록뿐만 아니라 다른 마이너 장르 음악들의 가능성을 끌어내 오늘날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지는 데서 기여한다. 그래도 너바나는 단순한 음악과 간단한 기타 리프로 성공했고 뒤이어 얼터너티브 록의 기타 리프도 헤비메탈 시대와 정통 하드 록보다 간단해졌다
너바나 덕분에 록의 생명력은 그 시절로부터 20년 가까이 더 이어질 수 있었고 록의 역사는 너바나의 전후로 나뉜다. 록 씬은 너바나가 나타나면서부터 오늘날에는 아무나 얼터너티브 록, 펑크 록을 하면서 정체성을 잃고 쇠퇴해 그 자리를 전자 음악과 힙합, R&B가 대신했는데 너바나 나타나기 전의 록 씬 역시 헤비메탈(글램 메탈)로 점철되어 생명력을 다할 뻔했는데 너바나가 떠오르면서 새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골수 헤비메탈 팬들은 너바나를 아주 싫어하지만 너바나 덕분에 헤비메탈도 얼터너티브 록과 섞여 새로운 장르의 메탈이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골수들은 그러한 메탈을 아예 메탈 음악으로도 인정하지 않지만
참고로 나는 너바나의 노래에서 틴 스피릿을 가장 좋아하는데 처음부터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에 중독되어서다. 그러나 라이브는 처음 기타를 너무 빠르게 쳐서 좋아하지 않고 원래 틴 스피릿은 드럼 소리가 나타나면서부터 초장 기타는 두 번만 반복되는데 웬만한 음원과 라이브에서는 네 번이나 반복되어 잘 듣지 않고 초장 기타가 원래대로 두 번만 반복되는 싱글로 발표된 틴 스피릿을 듣는다

4. 전성기와 In Utero 음반

1992년에 코베인은 코트니 러브와 결혼하는데 코트니도 기행과, 마약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해 8월에는 레딩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서면서 생애 최고의 공연을 하는데 이때의 라이브가 2009년 11월 3일에 발표된 dvd에 기록되었다

뒤이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는 여러 상들을 잡았고 이때의 라이브도 dvd로 기록되었다. 이 시상식에서 코베인과 코트니는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와 몸싸움까지 할 뻔하기도 했다. 액슬 로즈는 너바나의 음악을 먼저 존중했는데

너바나가 뜻밖에 떠오르자 게펜 레코드사는 서둘러 너바나가 공개하지 않은 곡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너바나는 같은 해 컴필레이션 음반 Incesticide를 발표했다

그리고 1993년에는 마지막 음반 In Utero를 발표했다. 음반 성적은 대세 너바나다웠으나 코베인은 너바나의 음악이 메이저에 우뚝 선 것에 복잡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고 정신의 문제로 헤로인에 중독되었으며 밴드 안에서는 마찰까지 빚어졌다. 따라서 너바나의 3집은 우울한 그런지의 패배주의, 염세주의 감성에 충실하다

1994년 초부터 밴드는 유럽 순방 공연을 시작했으나 코베인은 그해 3월 로마에서 의식이 없는 모습으로 발견되어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를 못 견디고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5.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너바나 해체 그리고 그뒤

1994년 4월 8일, 코베인은 시애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향년 27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는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자살로 굳혀졌다. 코베인의 죽음은 전 세계의 대중음악과 그 소비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몇몇 팬들은 그를 따라 자살하기까지 했다

커트 코베인이 죽자 너바나는 해체되고 노보셀릭은 정계에 입문했고 데이브 그롤은 기타와 보컬을 맡으며 너바나의 후속 밴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를 결성했다

데이브 그롤의 푸 파이터즈

너바나의 음반들은 21세기에 들어 개정되어 다시 발표되었고 너바나는 2014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으며 푸 파이터즈 역시 너바나의 후신답게 2008년에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할 만큼 흥행했고 2021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고 이로써 데이브 그롤은 두 번이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앞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후보로는 린킨 파크와 콜드 플레이가 가장 유력하다


앞으로 두 록 밴드를 더 글로 다루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너바나는 활동 기간이 너무 짧으니 그린 데이와 나머지 두 밴드와 비교하면 너바나 편이 가장 짧을 것 같다. 너바나의 인기는 코베인이 요절하면서 부풀려지지 않았냐고도 하지만 한창 활동할 때의 성적을 보더라도 절대 그렇지 않다. 커트 코베인은 코베인대로 펑크 록에 재능이 뛰어났다
얼터너티브 록은 이미 너바나 전부터 U2, R.E.M, 픽시즈Pixies 등의 록 밴드들을 시조라고 할 수 있고 시애틀 그런지 씬도 사운드가든Soundgarden이 먼저지만 너바나가 얼터너티브 록과 비주류 장르들을 메이저로 끌어들이는 데 가장 공이 컸고 시애틀 그런지 4 대장에서도 너바나가 가장 성공했으므로 너바나를 얼터너티브의 록의 열조로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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