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왕조(3)
-
성탕成湯, 전근대 왕조 문명의 開祖
成湯은 대륙 역사상 공인된 최초의 국가 商朝의 창업주다. 전래 문헌에서 湯의 시호는 天乙로 불리는데 商代 갑골문에서는 大乙(大에서 天으로 와전되었을 것이다), 成과 唐(商代에는 따로 불렸다가 周代부터 합쳐져 불렸고 唐은 湯으로 와전됨), 咸, 高祖乙로 불린다. 한때 湯이란 왕의 치적이 갑골문에서는 번성기의 祖로 기록되었다는 학계의 견해를 믿고 商 왕조의 시조를 大乙의 6대조 上甲으로 앞당기고 싶어 했던 적이 있으나 이는 무리가 매우 크며 전래 문헌에서 전해지듯이 갑골문의 제례와 맞춰도 成湯이 商 왕조의 시조가 맞는 것 같다 이번 글은 먼저 이에 대해 전제를 두면서 시작한다 갑골 卜辞에는 을미일에 上甲에서부터 祖乙과 羌甲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올린 기록이 있는데 제수품이 上甲에게는 10개가 바쳐졌지만 報乙부..
2024.02.07 -
帝辛, 사실 성군으로 치켜져 마땅한 마지막 商王
帝辛은 商代 마지막 왕으로 역사에 흔히 紂라는 불명예스러운 시호로 잘 알려졌다 역사에 기록된 그의 악행은 다음과 같다. 紂는 키가 크고 완력이 세어 맹수를 맨손으로 때려눕혔고 총명하여 모든 잘못을 언변으로 가릴 수 있었는데 그는 그 재주를 과신하여 세상 모든 이들이 노예인 줄 알았고 귀신마저 깔아 내리고 제사를 게을리하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녹대鹿台에 세상의 재물을 쌓는 한편 달기妲己란 여자와 함께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향락을 즐겼고 포락炮烙의 刑을 보여 자기에게 反하는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비렴飛廉 - 악래悪来 父子와 같은 간악한 이들을 곁에 두고 미자계微子啓와 기자箕子 같은 현인들을 멀리하고 끝내는 현인 비간比干이 충언을 하자 그의 심장을 갈랐다. 그의 폭정으로 천하가 신음하자 周 武王이 일어..
2024.01.01 -
태갑太甲과 이윤伊尹
史記 · 殷本紀에 따르면 天乙의 뒤로, 아들 太丁은 일찍이 죽어 太丁의 아우 外丙과 仲壬이 차례로 즉위한 뒤 아들 太甲이 즉위했다. 殷本紀에서는 太甲이 湯法을 어기고 황음무도해, 天乙의 신하 伊尹이 그를 동궁桐宮에 가두었는데 3년 뒤 太甲이 행실을 뉘우치자 그에게 왕위를 돌려주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유가의 입김이 너무 강해 마치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데 훗날 많은 역사 속의 야심가들에 의해 악용되었다 반대로 竹書紀年에서는 天乙로부터 太甲까지 왕위에 오른 순서는 같지만 太甲이 아직 어려 伊尹이 그를 별궁에 가두고 왕위에 올랐다가 7년 뒤 太甲에게 처단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무래도 竹書紀年의 기록이 현실에 더 들어맞는다 고고자료 갑골문에 따르면 大乙의 뒤를 이어 大丁(太丁)도 즉위했고, 大甲이 바로 그 ..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