伏羲 신화 해석

伏羲는 대륙 창세신화 속 신 또는 제왕으로 전래문헌에는 그가 팔괘를 창시했고 거미줄을 본떠 그물을 발명해 어렵을 인류에 전파하는 한편 수렵과 목축도 그의 유산으로 전해진다. 그밖에 동방 최고신으로도 전해져 太昊로도 불리며 봄의 화신이 되기도 하고 부계혈통은 번개와도 연결된다. 신화에 동방 최고신은 少昊로도 전해지고 대개 伏羲는 三皇에, 少昊는 五帝에 드는데 神農을 기준으로 그 전대는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므로 少昊는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伏羲의 모습은 蛇身人頭고 少昊는 새의 신으로 전해지는데 先秦 시대 東夷 산둥 다원커우 문화에서는 새를 숭배하는 신앙이 주가 되어 少昊의 전승이 뒷받침되므로 고고자료상 과연 伏羲가 少昊보다 선대에 놓이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伏羲의 모습은 蛇身人頭로 그가 단순히 어느 원시 뱀 토템 씨족 신앙으로만 이해될 수도 있으나 伏羲 신화를 분석하면 그리 간단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다
우선 伏羲란 이름에서 伏자는 엎드림을 의미하고, 羲자는 이것에서 파생된 犧牲이란 말도 있으므로 이 字는 제사의 제물 또는 그 의식에 바치기 위해 사육한 가축을 의미한다. 이 두 字를 합치면 제사에 가축을 제물 삼아 엎드려 기도하는 의미로 풀이되고 즉 伏羲란 신은 그것을 처음으로 창안해 낸 어느 이름 모를 원시인이 신격화되었을 것이다. 비록 목축은 신석기시대 생활상이나 이를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 하는데 목축과 사육이란 목적에서라도 伏羲가 인류에 수렵을 전했다는 전승은 이와 일맥상통하고 실제로도 수렵은 채집과 함께 구석기시대 생활상이다
伏羲는 庖羲로도 불리는데 庖자는 우리 한자로 고기 장사를 하는 푸줏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부엌, 요리, 요리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伏羲 또는 庖羲는 인류에게 수렵을 전파하고 또 요리를 전파했다고도 전해지는데 비록 원시시대에 사냥감에서 확보된 고기를 정교하게 가공하고 요리하기까지는 못했으나 불을 발견하자 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으므로 伏羲가 인류에 요리를 전파했다는 전승도 신화에 구석기시대 생활상이 반영되었음이 파악된다. 伏羲의 부계 혈통은 雷神, 번개므로 그가 하늘에 기도하자 번개가 떨어져 불이 났다고 하는데 이 모든 신화는 당대 생활상이 반영되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伏羲는 女媧와 남매 및 부부로도 전해지는데 이는 高辛氏의 딸과 盤瓠 간 자녀들끼리 통혼한 전승과 더불어 원시시대에 한 집안에서 동세대 형제사촌 간에 통혼을 했음을 반영한다. 실제로 한반도 近古 문헌에도 서역 유목사회의 난혼 풍습이 목격담으로 기록되었는데 그들은 번식을 위해 누이는 물론 어미와도 통혼했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어미를 차지했다. 문명화된 왕조 사회에서는 유목사회의 원시 풍속을 미개하게 바라보았을 것이고 史記 匈奴列傳에도 이와 비슷한 풍속이 기록되었는데 오늘날에도 티베트 고원족은 자매끼리 혼인할 상대를 공유한다
도상에서 伏羲와 女媧가 서로 蛇身을 감았다는 것은 성행위를 의미하고 그들은 위 도상에서처럼 가위와 자를 들었는데 원시시대 남녀는 가죽옷을 지어 폐백 물건으로 건네주면서 짝을 지었다. 옷감은 사슴 가죽으로 원시취락에서 출토된 獣骨로 보아 사슴은 돼지, 개, 소와 더불어 원시사회에서 인간과 함께한 동물들 가운데 가장 지배적이었는데 고대 28宿 별자리에서 4宮의 하나를 차지하기도 해 이러한 사슴의 이점은 伏羲가 龍神이란 전승과도 결합되어 麒麟이란 영물로 상상되었을 것이다. 말과 소 발굽은 사슴 발굽과 유사해 이 두 마리도 후세에 麒麟의 모습에 편입되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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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몸을 섞는 것은 음양의 조화로도 의미되는데 도상에서 두 남녀 신이 뱀 꼬리를 꼰 것도 이를 의미하고 전근대에 남성이 陽気와 태양에 상징된 것에 대비해 여성은 陰気와 달로 상징되었다. 따라서 伏羲는 태양, 女媧는 달을 짊어진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음양의 조화는 곧 세계 창조인데 세계 인류 창조 신화에서 伏羲-女媧, 그들과 유사한 남녀가 주역이 되는 것은 서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伏羲가 東夷란 기록을 검토하는데 伏羲-女媧図는 산둥 화상석으로 뿐만 아니라 대륙 서토와 중앙아시아, 한반도에서도 나타난다. 위 伏羲-女媧図에 그려진 의상만 해도 전통 華夏民이 아니라 한눈에 중앙아시아 서역인임이 파악되는데 羲자에도 유목민 가축 羊자가 머리에 얹혔다. 또 伏羲가 도읍했다는 陳은 허난 저우커우시 淮陽県으로 위치상 先秦 東夷의 토착지 산둥과도 가교가 되나 그럼에도 산둥 다원커우와는 거리가 있고 이곳은 양사오-허난 룽산 문화권이다. 뱀 꼬리가 음양의 상징이 된 것은 시라무렌 강 이북 수렵민 예벤키족과 허저족에 뱀이 태양의 화신이란 신앙과도 연계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拾遺記에 의하면 伏羲가 머리와 눈이 길었다고 하는데 이 구절은 다원커우인의 특징 편두로 인해 두상이 변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伏羲가 토착 東夷는 아니나 서역인이 어느 시대엔가 다원커우 문화권에 들어와 뿌리내렸음으로 이해되는데 실제로 다원커우 末 링양허 유적에서는 토기를 깨 매장하는 중앙아시아 습속이 발견되었다. 또 伏羲가 팔괘를 창시했다는 공적은 후세 史家들의 가작에 의해 이입되었을 것이나 다원커우 문화에서 양쯔강 이남과 연결되는 따뚠즈 링쟈탄 유적에서 옥제 팔괘도가 발견되어 팔괘의 기원이 인증되었고 인류 역사상 초창기 역법일 것이다

伏羲의 부계혈통이 雷神, 즉 번개라는 것과 그가 산둥 허쩌시 雷澤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온전히 산둥 토착 신앙으로 이해된다. 팔괘의 震은 동방, 번개, 木德, 春分을 가리키고 이는 동방 최고신 伏羲에게 해당하는데 伏羲가 동방 최고신으로는 전국시대에 가작되었을 것으로 그보다 전대에는 이러한 전승이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원래 伏羲는 少昊의 나라로 가정되는 다원커우 시대보다 후대에 놓여야 하고 그의 공적은 구석기시대(수렵, 蛇身 음양상징)와 신석기시대(목축, 요리, 제사) 생활상이 혼합되었으나 고서 기록으로만 보아도 그의 신화는 다소 신빙성이 높고 伏羲 신화의 윤곽은 양사오-허난 룽산 시대에 정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