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합집 32384로 추론하는 商代 종법

위 卜辞에서는 乙未日에 上甲으로부터 祖乙과 羌甲에 이르기까지 上甲과 직계 先王에는 제수품 10점, 上甲 이하 六示와 방계에는 3점이 언급되고 酒祭와 系祭를 지낼 여부를 점쳤다. 이 卜辞에서 방계 先王은 小甲, 戋甲, 羌甲만이 언급되었는데 이들은 방계면서도 준직계로 보인다. 小甲과 戋甲은 각각 직계 先王 大戊와 祖乙 앞에 놓였고 제수품 3점이 언급되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史記 殷本紀에 小甲이 大戊의 형으로 기록되었듯 그들은 직계 先王의 형으로서 준직계로 받들어진 것 같다. 따라서 기존 中丁-外壬-戋甲 삼 형제는 戋甲-祖乙 형제, 中丁의 二男들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殷本紀에는 戋甲과 祖乙이 父子 간으로 기록되었다). 이 卜辞로 商代 전기에는 적장자 왕위계승법이 따로 없었고 비록 형제간 계승이 주가 되긴 했으나 후기에 祖甲이 혈통 문제로 제례를 개혁한 예로 미루어보아 형제가 서로 즉위한 다음은 응당 형의 자손이 왕위를 계승해야 함이 당대에도 인식되었을 것임이 파악된다
고서에 大庚의 형으로 기록된 沃丁(卜辞에서는 虎祖丁으로 추측됨)은 언급되지 않는데, 위 卜辞에서는 실제로 재위했던 先王들이 나열되었듯 고서 기록과 달리 실제로는 재위하지 않았던 것 같다
小甲은, 상나라 정벌에 의하면 商初가 중기로 넘어가면서 잔혹한 인신공양제사를 개혁하려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 운동으로 인해 商 중기 도읍 정저우 商城에서 청동기를 궁전 주위에 매장하고 인두골 가공 작업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 개혁 운동은 실패했고 주 세력은 소멸했는데 상나라 정벌에서는 개혁의 주체를 大戊로 지목했으나 그는 적장자 中丁에게 무사히 대권을 계승시켰기에 大戊가 주체가 될 수 없고 그 형 小甲으로 보인다. 大庚의 三男들은 제례 순서에 따라 小甲-大戊-呂己 순으로 연장자임이 밝혀졌고 殷本紀에 呂己 시대에 商 왕실이 쇠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형들 간 왕위 분쟁을 보며 조용히 大戊로부터 왕위를 넘겨받고 다시 형의 적장자 中丁에게 대권을 고스란히 교체해 주었음으로 이해된다
羌甲은 대권을 적장자 南庚에게까지 계승시켰는데 卜辞에서도 先妣 妣庚과 함께 제사되어 고서 기록이 증명되었다
戋甲-祖乙 형제간 계승권은 祖乙이 형을 이겼고 祖乙은 직계 先王을 特祭함으로써 적어도 적장손 祖丁 시대에는 中宗으로 추존되었을 것이다. 그 뒤로 祖乙의 적통 祖辛-祖丁 父子와 傍孫 羌甲-南庚 父子 간에는 적통이 계승권을 장악했고 南庚 시대에 奄(오늘날 산둥 취푸)에 도읍했고 전대에 戋甲은 相, 祖乙은 邢에서 庇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는데 이 도읍지들이 실제 商代 도읍이었는지는 증명할 수 없으나 商 전기 九世之乱과 그로 인한 잦은 천도의 원인이 파악된다
이 정황으로 보아 商代에도 엄연히 적장자 왕위계승법 비슷한 것은 존재했고 商 왕실 開祖 上甲으로부터 大乙-大丁-大甲 3世까지는 그러했던 것 같은데 商代 적장자 왕위계승법은 비록 혈연상 조상은 아니나 전래 문헌에도 전해지듯 先商 시대 계보로부터 이미 뒷받침이 된다
고서에 唐의 태자 大丁은 일찍이 별세해 즉위 못하고 그 아우 外丙과 仲壬이 차례로 즉위한 뒤 唐의 적장손 大甲이 즉위했다고 전해지는데 위 卜辞로도 보았듯 大丁은 실제로 재위했고 大甲-外丙 형제가 그의 二男들로 밝혀짐에 따라 商代 적장자 왕위계승법은 大甲이 아우 外丙에게 대권을 계승시키면서 파기되고 전기에 걸쳐 형제의 적장자 간 왕위계승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外丙도 先妣와 配祭된 卜辞 기록이 보임에 따라 仲壬으로 추측되는 南壬이 그의 적장자로 추정된다. 周代 왕위계승은 全代에 걸쳐 立子立嫡制가 정착되었으므로 商代와 상대성을 두기 위해 후대 史家들에 의해 가족관계가 와전된 것 같다
唐에서 虎甲까지 商初와 중기, 즉 전기 世系는 다음과 같이 나열된다
大乙-成唐 → 大丁 → 大甲 → 外丙(大丁의 차남) → 大庚(大甲의 嫡子) → 小甲(大庚의 장남) → 大戊(大庚의 차남) → 呂己(大庚의 三男) → 中丁(大戊의 장남) → 外壬(大戊의 차남) → 戋甲(中丁의 장남) → 祖乙(中丁의 차남) → 祖辛(祖乙의 장남) → 羌甲(祖乙의 차남) → 祖丁(祖辛의 嫡子) → 南庚(羌甲의 嫡子, 祖丁의 종형제) → 虎甲(祖丁의 장남)
* 大示(직계)는 진하게 표시
商 후기 武丁-祖甲 父子 시대부터는 형제 중 未子의 왕위계승권이 정당화되었고 武乙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적장자 왕위계승법이 완성되었다